성악가가 아닌 크로스오버 테너로 임태경이 노래하는 이유

성악가가 아닌 크로스오버 테너로 임태경이 노래하는 이유

댓글 공유하기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나의 사명은 뭘까?… 그래서 얻은 답이 노래였어요”

혼다로부터 연구원 직을 보장받고, 원하면 성악가의 길로도 들어설 수 있던 그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노래를 부르기로 한 건,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편안한 음악으로.

지난 겨울 첫 음반을 발표, 그새 ‘열린음악회 고정 가수’라는 수식어가 붙인 크로스오버 테너 임태경(32). 감동을 주는 힘 있는 목소리가  열린음악회 무대와 제법 잘 어울린다. 노래를 부르게 된 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은 음악을 대중에게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으면 그뿐, 음악적 실험이나 시도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임태경은 음악인이기보다 그저 ‘노래하는 사람’이고 싶다. 

“대학교 다닐 때 몸이 아픈 친구들을 위해 노래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걸 계기로 자연스레 제 꿈도 생기게 됐죠. 어떻게 살면 멋있게 사는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혹시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사명은 뭘까?… 그래서 얻은 답이 노래하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아픈 친구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것으로 시작했죠. 사람이 감동을 받으면 면역 체계가 강해진대요. 면역 체계가 약한 백혈병 환우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기타 하나 메고 돌아다니면서 노래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자 더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중 앞에 서기로 결심한 거죠. 이쪽 일을 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성악을 공부했지만,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택한 것도 다르지 않은 이유다. 클래식은 탄탄한 음악이지만 학문적인 것 때문에 감정 표현의 제한을 받는다. 상대적으로 가요나 팝은 클래식에 비해 가볍지만 감정 전달이 직접적이고 호소력이 있다. 그 두 가지가 잘 조화된다면 좋은 음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성악이라는 것 자체가 음향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멀리 있는 사람까지 노래가 들리도록 하기 위해서 생긴 발성법인데 작은 소리도 크게 들을 수 있는 지금, 성악가의 노래하는 모습이나 발음은 자신이 성악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하고, 거북해 보였다. 노래를 하고 싶은 것이라면 굳이 성악 발성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애초 성악가가 되겠다고 하여 시작한 공부도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노래에 소질을 보여 예원중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고, 고등학교는 스위스에서 일반 학교를 다녔다.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고등학교였기에 자연스레 성악을 선택했는데, 특기를 보이자 학교에서는 1:1로 전문 선생님까지 붙여줬다. 미국 동북부 공과대학(WPI)에 들어가서도 성악 공부를 병행했지만 전공은 생산공학이었다. 학·석사 취득 후 굴지의 기업 혼다로부터 연구원 직을 보장받을 정도의 재원이었지만, 결국 그는 음악을 선택했다. 음악성을 인정받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테너 리처드 캐실리에게 사사했지만,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꼭 성악가가 되겠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크로스오버 음악을 하겠다고 한국에 들어온 것이 2002년 가을. 첫 음반 「Sentimental Journey」가 나오는 데 3년이 걸렸다. 앨범의 실제 작업 기간은 1년이었으나 자신만의 색을 찾기까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중간에 번복된 음반만 4장이나 됐다. 쉽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고, 혼자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좋은 음반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여러모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이번 앨범은 가요 코드를 많이 사용했고, 클래식 느낌을 약간 입힌 것이 특징이다. 힘들게 작업한 보람이 있는지 다행히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 곡 하나하나를 타이틀곡처럼 정성 들여 만든 결과,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만도 대여섯 곡 정도. 그로선 감사한 일이다.

“앨범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이야기’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한 장의 앨범에 넣기엔 역부족이었요. 10권의 책으로 비유했을 때, 이번 앨범은 1권에 해당한다고 보면 돼요.”

그의 음악을 듣고 사람들은 “팝페라치고는 좀 가볍지 않냐” “앨범을 조금만 더 빨리 냈으면 국내 1호 팝페라 가수가 됐을 거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임태경은 팝페라 가수가 아니다. 크로스오버 테너다. 팝페라는 크로스오버 안에 속하지만, 크로스오버가 곧 팝페라는 아니다. 팝페라는 클래식에 좀더 중심을 두고 있고, 크로스오버는 클래식은 물론 재즈·팝·가요·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더 적극적으로 넘나든다. 그는 음악을 표현해내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장르라도 접목시키고 싶다. 그래서 클래식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만약 자신이 팝페라 앨범을 냈다면 오페라 아리아를 팝으로 새롭게 편곡한 곡들을 담았을 것이라며 024Sentimental Journey」는 명백히 크로스오버 앨범이라고 이야기한다.

“형주씨가 예원중학교 13년 후배더라구요. 라이벌 의식을 느끼지 않냐고 질문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또 접근 방식이 다른 거니까. 형주 씨는 성악가 쪽으로 더 접근하는 것 같고, 저는 대중이 듣기 편하다고 하면 다 포기하고 그렇게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서른이 넘은 나이에 데뷔해 늦은 감도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이제서야 비로소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다.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달하기 위해선 자신이 충분히 음악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음악 작업을 하기 이전에 먼저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맺으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굴곡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한다. 다양한 감정과 느낌에 대해 생각하고, 깊게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한국과 유럽, 미국을 오가며 생활한,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삶 자체가 크로스오버라고 말하는 그는 세계 무대에도 서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정서를 조금 알기에 음악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만큼 욕심도 생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노래를 들려줌으로써 더 큰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바. 본분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

글 / 신현화 기자  사진 / 지호영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오늘의 포토 정보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