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정아 “아이들에겐 극성 엄마, 남편에게는 애교쟁이 마누라”

염정아 “아이들에겐 극성 엄마, 남편에게는 애교쟁이 마누라”

댓글 공유하기
염정아라는 배우를 떠올릴 때마다 개인적인 편견이 있었다. 드라마 속 차갑고 도시적인 이미지처럼 실제로도 날카로운 카리스마에 깐깐하고 새침한 모습이 전부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녀는 무척 편안하고 유쾌했다. 이웃집 수다쟁이 언니처럼 털털하고 수더분한 모습이 그야말로 천생 아줌마였다.

배우라는 이름으로 3년 만에 돌아오기까지
염정아 “아이들에겐 극성 엄마, 남편에게는 애교쟁이 마누라”

염정아 “아이들에겐 극성 엄마, 남편에게는 애교쟁이 마누라”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을 때 염정아(39)는 휴대전화를 들고 아이들 이야기에 한창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내심 놀라기도 했다. 대부분의 여배우들이라면 작품 이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기를 꺼리게 마련인데 염정아는 뭔가 조금 달랐다. 기자를 앞에 두고도 아이 키우며 사는 일상적인 일들을 스스럼없이 큰 소리로 주고받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드라마가 끝났어도 저는 여전히 바빠요. 며칠 전에는 큰아이랑 에버랜드에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황사 때문에 못 갔어요. 대신 동네 근처에 있는 뽀로로 테마파크에 데리고 갔는데 입이 이만큼 나오더라고요. 황사 때문에 못 간다고 설명을 했는데도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결국 롯데월드에 가서 밤 8시까지 놀았어요(웃음).”

염정아는 얼마 전 종영한 MBC-TV 수목드라마 ‘로열패밀리’에 출연하며 3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배우로서 염정아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켰고 변함없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3년이 금방 지나갔어요. 오래 쉰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이 참 빠르더라고요. 사실은 일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아이들 키우느라 바빴거든요. 그런데 소속사에서 시놉시스 하나를 주면서 하도 읽어보라고 하기에 며칠 놔뒀다가 봤죠. 재미있어서 정말 큰맘 먹고 했어요.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보다는 꼭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연기 인생 통틀어 가장 강했던 인물, 김인숙
‘로열패밀리’에서 염정아는 고아원 출신이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재벌가 JK그룹의 둘째 며느리로 들어가 결국 재벌 총수의 자리에까지 올라가는 김인숙을 연기했다. 보잘것없는 배경 때문에 시댁 식구로부터 갖은 핍박을 당하며 이름 대신 ‘K’로 불리지만 자신을 무시하고 짓밟는 로열패밀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식까지 버릴 정도로 비정한 악녀 캐릭터였다.

“그동안 맡았던 역할들 중에서 가장 센 연기였어요. 김인숙이라는 인물이 가진 얼굴이 다양하잖아요. 다른 작품에서는 제게 주어진 캐릭터가 하나면 그걸로 끝인데 김인숙은 매회 신마다 달랐어요. 감정신을 한 번 찍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어요. 연기하기에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어찌 보면 그 점이 매력 있었던 것 같아요.”

극렬한 감정 연기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과감히 도전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요트를 타고 추격전을 펼칠 때는 멀미약을 먹었는데도 세 번이나 기절했다. 그래도 다행히 스태프들이 그녀를 많이 배려해줬다. 고층빌딩 옥상 난간에서 덜덜 떠는 연기를 해야 했을 때는 스턴트맨이 그녀를 대신했고, 헬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실제로는 지상에서 촬영하고 나머지를 CG로 감쪽같이 처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녀 자신부터 김인숙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드라마 막바지 부분에서 아들을 죽인 엄마로 오해받는 설정은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김인숙은 보통 엄마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대본을 받을 때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싶었고 혼자 대사를 읽어볼 때는 감이 오질 않았죠. 한국사회에서 이해하기 힘든 감성을 정당하게 보일 수 있게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컸어요.”

염정아 “아이들에겐 극성 엄마, 남편에게는 애교쟁이 마누라”

염정아 “아이들에겐 극성 엄마, 남편에게는 애교쟁이 마누라”

두 아이의 열혈 엄마로 사는 행복한 일상
드라마 종영과 동시에 염정아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한동안 극중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해 방황하기도 한다지만, 엄마와 아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지닌 그녀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로열패밀리’의 김인숙으로부터는 싹 벗어났어요. 결혼 전에는 그러지 못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집에 가면 남편, 아이들과의 생활이 있어서 바로 잊게 되더라고요. 제 감정에 빠져 있을 틈이 없어요. 촬영 중에도 그랬어요. 현장에서는 ‘아, 내가 배우구나’ 싶다가도 집에 가자마자 아이들이 ‘엄마~’ 하며 달려들면 완전히 역할이 달라지죠. 촬영장에서는 보호받는 입장이고 집에서는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고요.”

염정아는 2006년 정형외과 전문의 허일씨와 결혼해 네 살 난 딸과 16개월 된 아들을 두었다. 결혼과 출산은 그녀를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배우로서도 한층 더 성숙하게 발전시켰다. 행복한 변화였다.

“엄마로서, 배우로서 살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고 행복해요. 집에서는 그저 엄마, 아내이지만 드라마 속에서 저는 180° 다른 여배우로 변신하니까요. 결혼하면서 한 번 성숙해졌고, 큰아이와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또 성숙해졌고, 아마 학부모가 되면 더 성숙해지겠죠? 그런 과정들 속에서 제가 달라지는 모습들이 연기에도 묻어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청자들에게도 분명 변화하는 모습이 보일 거고요.”

얼마 전에는 남편 허씨가 병원을 옮기면서 온 가족이 동탄 신도시로 이사했다. 배우가 아닌 개인 염정아로 살았던 지난 시간 속에서 그녀는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들을 키우면서 평범한 일상에 푹 빠져 지냈다. 네 살짜리 큰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둘째 아들을 돌보며 오직 육아에만 전념했다.

“제 자식이라 그런지 제 눈에는 정말 예뻐요. 말도 잘하고 귀여워 죽겠어요. 그리고 무척 똑똑해요. 엄마들은 모두 자기 자식이 천재인 줄 안다잖아요. 저도 그래요(웃음). 그렇게 아이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보며 저도 많은 것을 배워요.”

특히 염정아는 아이의 또래 친구 엄마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스스로 ‘극성 엄마’라고 말할 만큼 아이들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인다. 큰딸은 세 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냈고, 아이들 교육에 좋다는 정보를 속속 입수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단단히 벼르고 있을 정도다.

“동네에 사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 늘 연락하며 붙어 다녀요. 그러면서 정보도 얻고요. 앞으로 아이들 교육을 위해 갈 데도 많고, 살 것도 많아요. 아이들 교육에 좋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편이에요. 어쩌면 나중에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다닐지도 몰라요.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러는 거 보면 학부형 되면 장난 아닐걸요?(웃음)”

남편 앞에서는 사랑스러운 애교 만점 마누라
염정아 “아이들에겐 극성 엄마, 남편에게는 애교쟁이 마누라”

염정아 “아이들에겐 극성 엄마, 남편에게는 애교쟁이 마누라”

염정아는 ‘로열패밀리’를 촬영하며 가족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남편이 촬영장에 피자 40판을 들고 나타난 적도 있다. 촬영장에서는 늘 혼자였지만 자신을 응원해주는 남편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속에서 뭔가 꿈틀거렸다고 한다. 그 때마다 그녀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더 노력했다.

“남편은 제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였어요. 모니터도 다 해줬고요. 밤을 새며 촬영할 때는 ‘힘들어도 어차피 하는 거니까 짜증 부리지 말고 잘해라’, ‘시청자들이 즐겁게 보고 있으니 힘내라’고 조언도 해줬고요. 촬영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서 미안했는데 정말 고마웠죠. 저 대신 남편이 평소보다 집에 일찍 들어가 아이들과 놀아주니까 아이들이 아빠를 더 잘 따르게 됐으니 긍정적인 면도 있네요(웃음).”

아이들에게 열혈 엄마라면 남편에게는 ‘애교쟁이’ 아내다. 극중 상대 배우 지성과 키스신을 찍고 나서는 남편이 방송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방송 시간에 맞춰 남편을 밖으로 끌어내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인터넷에 뜬 모니터 기사와 재방송으로 남편이 제 키스신을 나중에 보게 됐어요. 어찌할 바를 몰랐던 저는 남편에게 다가가 ‘오빠, 그게 말이야…’ 하며 조심스레 자초지종을 털어놨죠. 그런데 오히려 남편은 ‘괜찮다’고, ‘그런 것도 이해 못할 거면 어떻게 내가 배우랑 살겠느냐’고 편하게 얘기해주더라고요. 평소 저는 남편에게 애교를 많이 떨어요. 제가 남편 아니면 어디 가서 애교를 부리겠어요(웃음).”

가정의 경제권은 그녀가 쥐고 있다. 재산 관리도 직접 한다고. 공백 기간 동안에는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 살았는데, 부부끼리 수입 및 지출 내역을 모두 공개하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간혹 드라마에서의 이미지처럼 실제로도 재산이 많은 줄로 오해해 난처했던 적이 있었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돈 안 많아요(웃음). 그냥 남편이 버는 돈과 제가 이따금 활동하는 돈으로 이것저것 조금씩 투자할 뿐이에요. 특별한 재테크 비결은 없어요. 다만 최근에 저희 가족이 남편의 병원 이전과 함께 동탄 신도시로 이사를 했는데 이 동네가 정말 살기 좋아요. 요즘 집 주변에 주상복합 건물들도 많이 들어서고 있고요. 예전보다는 집값이 좀 오른 것 같지만 어쨌든 저는 이쪽으로 이사를 고려하는 분이 계신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어요. 그런데 저, 행복한 티 안 내려고 하는데 자꾸 티가 나나요?(웃음)”

그녀는 당분간 가정에만 충실할 계획이다. 차기작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해두지 않았다. 드라마 촬영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던 만큼 아이들과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금 염정아가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이다.

“아이들한테 한창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예요. ‘로열패밀리’를 찍으면서 저 스스로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어요. 차라리 저한테 떼를 쓰면 덜 미안했을 텐데 ‘엄마, 드라마 찍고 올게’라고 하면 네 살 된 딸이 쿨하게 다녀오라고 해요. 그런데 유치원 선생님한테 물어보니까 티가 난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랑 떨어지다 보니 엄마한테 못 받는 사랑을 다른 데서 받으려고 하는 건지 어리광을 부린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무척 아팠어요.”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여자로서, 배우로서 그 깊이를 더하고 있는 염정아는 잠깐의 휴식 뒤 다시 배우로 돌아올 것이다.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 연기를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여유, 인생을 길게 볼 줄 아는 진짜 배우이기 때문이다.

“환갑이 되어도 제 색을 잃지 않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로열패밀리’를 통해 마흔의 나이에도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제가 할머니가 되면 60대 여배우도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 거예요. 외국 영화에서처럼 할머니도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고요(웃음).”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이성원, 경향신문 포토뱅크 ■장소 협찬 / 망고식스(02-518-7266)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오늘의 포토 정보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