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작가대상 수상한 ‘신의 저울’ 유현미 작가

한국방송작가대상 수상한 ‘신의 저울’ 유현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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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남편을 지켜보며 일반인과 법조인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싶었어요”


지난해 하반기, 마니아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드라마 한 편이 있었다. 초호화 캐스팅도 아니었고 좋은 시간대 편성도 아니었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탄탄한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환호 속에 막을 내렸다.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명품 드라마로 회자되던 SBS-TV 금요드라마 ‘신의 저울’의 유현미 작가를 만났다.


한국방송작가대상 수상한 ‘신의 저울’ 유현미 작가

한국방송작가대상 수상한 ‘신의 저울’ 유현미 작가

대상, 10년 뒤에나 받을 줄 알았다
지난 2008년 한 해 동안 방영된 드라마는 과연 몇 편이나 될까. 언뜻 생각해봐도 수십 편이 넘는다. 그 수많은 드라마 중에 당당히 시청자와 전문가들로부터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드라마가 있다. 바로 SBS-TV 금요드라마 ‘신의 저울’이다.

이 드라마는 사랑하는 여자를 죽인 범인을 찾고 동생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검사가 된 주인공 장준하(송창의 분)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이 사실을 숨긴 채 변호사가 된 김우빈(이상윤 분) 사이에서 벌어지는 ‘진실’을 찾아가는 법정 스릴러물이다.

스타급 캐스팅도 아니었고, 미니시리즈 편성 시간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법정 드라마를 탄탄하고 매력적인 스토리로 승화시키면서 법정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드라마를 향한 찬사는 전문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동료 작가들이 인정해줘야만 받을 수 있는 ‘2008년 방송작가대상’까지 거머쥐면서 ‘신의 저울’은 자타공인 2008년 최고의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대상을 받은 지 한 달여가 지난 뒤,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현미(45) 작가. 그녀는 소녀같이 단아한 이목구비에 따뜻한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정말 법정 스릴러물 쓴 작가가 맞느냐”며 농담을 건넸더니 “다들 제가 남자인 줄 알았대요”라며 한바탕 웃는다.

수상 축하 인사에 유 작가는 “이렇게 일찍 그 상을 받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다.
“정말 받고 싶었던 상이지만, 5~10년 후에나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제 작품이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거든요. 그런데 수상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죠. 기쁘다는 생각보다,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어요. 한참동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제가 대상을 받았다는 게 실감이 나더라고요. 참 이상하죠?(웃음)”

유 작가가 수상을 짐작하지 못한 이유는 대상 후보에 오른 작품들이 ‘이산’, ‘베토벤 바이러스’, ‘온에어’ 등으로 모두 훌륭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작가대상의 심사를 맡은 이환경 심사위원은 ‘신의 저울’ 수상에 대해 “치밀한 구성과 절제된 대사, 해박한 법률적 지식 운영이 돋보였고, 특히 진실과 정의를 찾아가는 작가의 집념 어린 의지가 돋보였다”고 평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자칫 방송이 되지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법정 드라마는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편견 때문에 선뜻 드라마를 맡겠다고 나서는 PD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SBS 드라마국 홍창욱 CP가 연출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작품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홍 PD는 “유현미 작가는 직접 발로 뛰어서 글을 쓰는 것이 큰 장점”이라며 치켜세웠고, 드라마 작가의 대모 격인 김수현 작가 역시 “‘신의 저울’을 즐겨 본다”며 “드라마를 보면 작가의 함량이 느껴지는데 좋은 작가 같다”며 칭찬한 바 있다.


법조인들, 알고 보면 고민과 갈등 많다
한국방송작가대상 수상한 ‘신의 저울’ 유현미 작가

한국방송작가대상 수상한 ‘신의 저울’ 유현미 작가

법에 대해 워낙 문외한이었던 유 작가는 드라마를 쓰면서 법전을 옆에 끼고 살았고, 법원과 검찰을 오가며 발로 뛰어 취재를 했다. 유 작가는 취재를 다니면서 이 드라마가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법조인과 사법 피해자들이 모두 이 스토리를 들으면서 “정말 재미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 드라마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사법 피해자들의 한풀이 드라마도 아니고, 법조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싶은 드라마도 아니었어요. 저는 이 드라마를 통해 법조인들과 일반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두터운 ‘갭’이 줄어들었으면 했어요.”

유 작가는 취재를 다니면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남편이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다행히 나중에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법정에서는 다시 그런 사법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드라마를 썼다고 한다.

반면, 유 작가는 법조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색안경’도 벗기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 그녀의 남편은 대전지검 출신 변호사다. 유 작가가 ‘갭을 줄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남편의 일에서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법조인의 아내로 오랜 시간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법조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아닌 편견을 느꼈다는 것.

“법조인들은 기득권이 있어 보이잖아요. 고민도 없을 것 같고, 왠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것 같고. 하지만 알고 보면 법조인도 하루 종일 밀려드는 형사 사건에 허덕이는, 3D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또 이름도 잘 모르는 먼 친척들까지 이런저런 부탁을 하는데, 많은 검사들은 법대로 하고자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법조인들도 그런 부분에서 고민과 갈등이 많은 것 같아요.”

법조인과 일반인의 갭을 줄이겠다는 유 작가의 의도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처음 드라마가 만들어질 때 사법연수원생의 살인이라는 소재에 난색을 표했던 사법연수원 측도 드라마가 끝난 뒤, “드라마를 복사해달라”며 “정말 재미있게 봤다”고 흡족해했다. 또 취재 도움을 받았던 부장검사, 부장판사들 역시 마지막 방송이 끝나자 “정말 좋은 드라마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평소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던 남편까지 금요일 저녁에는 일찍 집에 들어와 드라마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또 취재하면서 만났던 사법 피해자들 역시 드라마를 보고 “정말 잘 봤다”며 격려의 전화를 걸어왔다.
“마지막 방송이 끝난 후, 새벽 2시까지 전화가 끊이지 않았어요. 법조인과 사법 피해자들 양쪽에서 격려의 전화를 받으면서 무척 행복했죠. 양쪽 입장을 모두 만족시켰으니, 내 기획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구나 싶어서요.”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던 ‘신의 저울’은 18%가 넘는, 금요드라마로서는 보기 드물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막을 내렸다.

내 사전에 ‘쪽대본’은 없다
방송이 끝나고, 요즘 유 작가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도 마음껏 읽고, 산책도 하고, 등산도 한다.

한국방송작가대상 수상한 ‘신의 저울’ 유현미 작가

한국방송작가대상 수상한 ‘신의 저울’ 유현미 작가

유 작가가 방송작가로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올해로 18년째다. 하지만 유 작가는 결혼 이후 남편이 발령을 받아 지방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일 년에 1~2편 정도 단막극 중심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쓰기에는 단막극이 가장 무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미니시리즈처럼 긴 호흡을 요구하는 드라마는 몇 개월 동안 집필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유 작가는 용기를 내어 KBS 극본 공모전에 응모를 했고, 보란 듯이 당선했다. 그 뒤 미니시리즈 ‘그린로즈’, 아침드라마 ‘사랑하고 싶다’ 등 호흡이 긴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단막극을 오래하다 보니 미니시리즈로 넘어가기가 힘들더라고요. 시놉시스를 써놓고도 중단된 게 부지기수예요. 감독님들이 저를 보고 하는 말은 ‘대중성이 없다’였어요. 도대체 그 대중성이란 게 뭘까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복수극을 그린 ‘그린로즈’를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죠. 다행히 ‘그린로즈’ 시청률 면에서도 성공을 거둔 드라마였어요.”
미니시리즈를 집필할 때는 서울에 올라와 5개월 동안 오피스텔에 살면서 원고를 완성시키곤 했다. 아들이 기숙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많이 컸으니 아이가 엄마의 일을 이해하지만, 사실 어릴 적부터 일하고 바쁘게 지낸 탓에 아들에게 미안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가 일 욕심이 참 많았어요. 단막극을 하면서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까지 병행할 정도였으니까요. 항상 바쁜 엄마였기 때문에 아이와 자주 놀아주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베란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놀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미안하더군요.”

요즘에는 대전에 내려가 있으면, 아이가 일하러 서울에 안 올라가느냐며 물어볼 정도다.
유 작가의 드라마에는 쪽대본이 없다. ‘신의 저울’ 주인공이었던 송창의 역시 인터뷰 중 “미리 대본이 나와서 수월하게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을 정도로 드라마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쪽대본이 없다’는 것이다.

“저는 대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정말 싫어해요. 대본이 일찍 나오면 시간에 쫓기지 않아서 좋고, 미리미리 촬영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 제작비도 절감되잖아요. 그래서 제 평생에 쪽대본은 한 번도 없었어요. 물론, 앞으로도 없을 거고요(웃음).”


주류와 비주류를 소통하게 만들고 싶어
앞으로 유 작가는 미니시리즈뿐만 아니라, 주말드라마와 대하드라마 같은 시대극을 써보는 게 목표다. 특히 유 작가의 스타일답게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가미할 생각도 있다. 잠시 여유를 누린 뒤, 올 하반기부터는 다음 작품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정말 의미 있는 드라마를 하고 싶어요. 작가는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한 발씩 놓고 그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주류와 비주류가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좋은 드라마를 쓰는 게 제 꿈이에요.”

각박하고 힘든 삶에 지친 사람들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간만이라도 행복하길 바란다는 유 작가의 따뜻한 마음,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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