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의 두가지 얼굴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끝나고 몇 해가 흘렀지만 길라임은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냐고 묻던 김주원의 눈빛은 좀처럼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배우의 오라를 또렷하게 새겨놓고 잠시 자리를 비웠던 그가 돌아왔다. 그것도 두 얼굴로.

현빈(32)이 멋진 이유는 배우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에 군 입대를 택해 인기에 취하지 않았고, 자신의 2년 전을 가뿐하게 능가할 만큼 깊고 남자다운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군 제대 이후 첫 작품으로 영화 ‘역린’을 택했던 그가 브라운관 복귀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영화 ‘역린’의 분위기가 좀 무거웠던 터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밝고 가벼운 작품으로 시청자께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그의 복귀작인 SBS-TV 수목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는 ‘야왕’, ‘잘 키운 딸 하나’를 연출한 조영광 PD와 ‘청담동 앨리스’를 집필한 김지운 작가가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한 남자의 두 가지 인격과 사랑에 빠진 여자의 삼각관계를 다룬 내용이다. 극 중 현빈은 1인 2역을 맡아 최고급 호텔과 테마파크를 소유한 까칠한 재벌남 구서진과, 그의 또 다른 인격이자 여주인공 장하나(한지민 분)와 사랑에 빠지는 따뜻한 순정남 로빈을 동시에 연기한다.

“서진은 꿈과 희망이 넘치는 테마파크에서 혼자만 불행한 사람이에요. 자신의 다른 인격이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 평생을 절제하며 살다 보니 성격도 굉장히 날카롭고 쌀쌀맞죠. 반대로 로빈은 전형적인 동화 속 백마 탄 왕자 같아요. 누군가의 어려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도와줘야 하는, 요즘 말로 하면 ‘사기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네요(웃음). 두 인물 모두 실제 제 모습과는 꽤 달라서 누구와 더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번 드라마는 웹툰 ‘지킬 박사는 하이드씨’를 원작으로 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속 이중인격을 차용한 만화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역할을 뒤집어 불쑥 찾아오는 또 다른 인격을 선한 인물로 묘사한 점이 독특하다. 드라마는 원작 웹툰에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해 조금 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라임이와 몸이 바뀔 때 여자 연기를 했어요. 손발이 오글거렸지만, 라임이를 보고 따라 하면 되니까 연기할 때 별 부담감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 상상만으로 전혀 다른 두 인물을 그려내야 하니까 훨씬 어려워요.”

촬영장의 완벽주의자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현빈은 ‘현테일’로 불린다. 그의 성에 꼼꼼하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인 디테일을 붙인 것으로, 조 PD가 지어준 별명이다.

“현빈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톱스타임에도 거드름 피우는 것 없이 현장에서 정말 밝고 열정적으로 일해요. 성격도 어찌나 꼼꼼한지, 촬영 전에 서진이 운동을 싫어한다고 적힌 시놉시스를 갖고 와서는 근육을 얼마나 빼야 되냐고 묻더라고요(웃음). 맡은 배역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진지한 태도가 참 멋지더
군요.”

그의 꼼꼼함은 작품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미간의 주름 하나까지 신경 쓴다는 대목을 듣고 있자니 왜 ‘현테일’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십분 이해가 갔다.

“이중인격에 관한 국내외 영화, 드라마는 다 찾아봤어요. 날 선 인격인 서진은 빈틈없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안경을 끼고 머리는 포마드를 발라 넘겼어요. 의상 역시 주로 정장을 입죠. 무표정한 인물이라 미간의 주름으로 기분을 표현해요. 유하고 부드러운 로빈은 머리도 차분하게 내리고 따뜻한 분위기의 옷을 입어요. 이 밖에 표정이나 말투도 신경 써서 연기하는 중이에요.”
‘역린’에 이어 다시 한번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 한지민은 현빈의 1인 2역을 보고 있으면 다른 두 배우와 연기하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했다. 현빈이 해병대 출신이라 수중 촬영 때 의지가 많이 되더라는 귀여운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덧붙였다.

“로빈일 때는 장난도 많이 치는데 서진일 때는 말 걸기가 무안할 정도로 차갑게 변해요. 워낙 연기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분이라 옆에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4년 만에 안방극장에서 현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저 반가울 따름이지만 그의 어깨는 무겁다. 동시간대 경쟁작인 MBC-TV ‘킬미힐미’의 지성 역시 다중인격 장애를 지닌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 시청자는 누구의 연기에 더 공감할지, 수목드라마의 왕좌는 누가 차지할지 관전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으로 보인다.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고이란(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