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나요? 내 남편의 마흔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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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남자들은 마흔이라는 단어와 함께 ‘불안’, ‘위기’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한다. 성공을 위해, 가족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어제 같지 않은 체력,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를 더욱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이는 때때로 가족의 위기가 되기도 한다. 남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걱정거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마흔과 마주한 남편들의 고민을 김병수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풀었다.

알고 있나요? 내 남편의 마흔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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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흔을 앞두고 건강 걱정이 앞섭니다. 건강검진을 받았을 땐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스트레스나 과로로 쓰러지는 동료들을 하나둘 볼 때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라는 책 제목에 얼마나 공감했는지 모릅니다. (이○○, 39, 직장인)
신체적인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시기가 바로 40대입니다. 홍삼과 같은 건강기능식품이 없으면 안 되고, 뱃살이 나오는 때이기도 하죠. 게다가 이 무렵부터 지인들이 암에 걸리거나 심장마비로 돌연사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부모님들도 건강이 눈에 띄게 안 좋아지고요. 자연히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지요.

개중에는 ‘술을 끊어야겠다’, ‘운동을 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이 결심들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40대는 그만큼 일과 책임감이 증가하는 시기이기도 하거든요. 위장에 구멍이 나고, 고혈압으로 식단 조절을 해야 한다고 해도 회식엔 꼭 참석해야 합니다. 남들에게 생기는 예외적인 일들이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말이죠. 안타깝게도 조각조각의 증상들은 몸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이를 무시하거나 왜곡하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지나친 긍정은 자만심이 될 수도 있어요. 어떤 질병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진 않습니다. 최소 6개월, 1년은 쌓인 겁니다.

수많은 상담자들이 마흔의 위기는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하시는데, 전문가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 사실 약을 먹고 보신을 하는 것도 불안하기 때문이거든요. ‘이거라도 먹으며 버텨보자’ 하는 심정인 거죠. 그 불안함을 바탕으로 근력 운동 열심히 하시고 뱃살부터 줄이세요. 삶은 점점 더 추운 곳을 향해 걸어가는 여행자의 인생입니다. 동사하지 않으려면 몸을 쓰면서 뛰어야 합니다. 몸이 건강할수록 정신적인 질병에 걸릴 확률이 적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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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처럼 열심히 살았습니다. 덕분에 겉으로 보기엔 부족함이 없고 남들이 말하는 소위 성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부부관계입니다. 예전 같지 않은 제 모습이 비참하고 아내 보기도 부끄럽습니다.
(최○○, 43, 자영업자)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상당수의 분들이 이와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극단적인 분들은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도 하십니다. 정력이 남성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다움을 잃었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남자들에게 성생활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라는 마음속에는 ‘아내가 이런 나로 인해 바람을 피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포함돼 있습니다. 사실 중년 여성들은, 성적으로 활발한 분들이 아니라면 크게 관심이 없거나 관심 자체가 떨어지는데도 말이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모든 신체 기능이 저하됩니다. 40대가 되면서 성 기능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에 20, 30대 때와 달리 당뇨, 혈압, 비만 등 부차적인 문제들이 발기 저하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성 기능 저하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기대치를 재조정하지 않으면 괴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Q 아내와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대화를 하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있으면 아이들을 통합니다. 아내가 제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합니다. 아내도 나름 힘든 일들이 있겠지만 저도 저만의 사정이 있는데, 그런 마음도 모른 채 잔소리를 할 땐 화가 납니다. 분명 아내가 변했습니다. (조○○, 41, 공무원)
의지가 아무리 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해도 호르몬의 힘을 당해낼순 없습니다. 마흔은 신체적으로 여성호르몬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남성호르몬이 줄어드는 시작점입니다. 여성들과 달리 점진적으로 그 과정을 겪다 보니 본인 스스로가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대다수입니다. 변화하는 원인을 ‘하던 일이 잘 안 돼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내가 변해서,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 라고 투사해 찾으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호르몬의 변화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아내나 가족 입장에서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남자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어쩌면 아내가 변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변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나요? 내 남편의 마흔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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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40대 여성들이 저를 찾아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남편과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다”입니다. 반대로 남편들은 “아내가 내 마음을 몰라줘 서운하다”라고 합니다. 각자의 입장이 이렇다 보니 대화가 성립될 수 없겠죠. 중년의 결혼생활은 달콤했던 신혼과는 엄연하게 다릅니다. 그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화의 싹입니다. 저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소통하려 하지 말라고요.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40대의 남녀는 관심사 자체가 다릅니다. 남자들은 주로 건강, 승진 등 개인적인 것에 비중을 두는 반면 여성들은 육아, 가족, 쇼핑 등에 의미를 둡니다. 관심사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뇌구조가 다른데 완벽한 소통이 가능할까요? ‘내 마음 같았으면 좋겠어’, ‘내 마음을 알아줘’라고 기대하다 보면 갈등만 쌓일 겁니다.

더욱이 40대 이상의 남자들은 감정 표현이 제한돼 있어요. 저는 이를 감정 난독증이라고 하는데요. 가만히 살펴보세요. 남자들은 “외로워”라는 말을 하지 않고 “술 한 잔 해야겠어”라고 말합니다. “회사에서 잘릴 것 같아 불안해”도 “산속에 들어가 살아야겠어”라고 돌려 말합니다. 자기감정을 엉뚱하게 읽다 보니 표현도 그리 되는 겁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길 바랍니다.

Q 아버지 세대들이 그러했듯 열심히 돈을 벌어다주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더군요.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벌써부터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아들 녀석은 저와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왔나 싶습니다.
(유○○, 41, 회사원)

남자들은 일단 외롭다는 느낌이 들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하는 중립적인 행동들도 나를 거부하는 행동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도가 심해지면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은 어느 순간 미움으로 바뀝니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게 되고, 사소한 잘못에도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죠.

안타깝게도 부모와 자식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시기가 다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5차원으로 가지 않는 이상 동일한 시간대에서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시계와 자녀들의 시계는 다른 시간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가족으로부터의 고립을 완화하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도록 해보세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실제로 이를 지키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아내가, 자식들이 다가와주길 바라는 건 이기적인 욕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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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올해로 입사한 지 15년. 회사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흔을 지나고 보니 바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들이 허무하기만 하네요. 경쟁 사회에서 내 몫으로 남는 것은 하나도 없고,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도 무섭습니다.
(도○○, 43, 회사원)

40대가 되면 대부분 조직 내 관리자의 위치에 오릅니다.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에 맞춰가려면 후배들에게도 친절하게 잘 대해줘야 하죠. 개중엔 여전히 강한 분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게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바깥으로 부드러워지기 위해서는 내면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조직이라는 공간은 그런 배려를 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버릇없는 후배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가 치밉니다. 40대들이 중요하게 여긴 의리나 책임감도 요즘 20, 30대에게는 안 통합니다. 출근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바꿀 수 없다면 본인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음의 3단계를 제안합니다. 먼저 ‘그럴 수도 있겠다’, ‘사정이 있었겠지’라고 인정하세요. 상대에게 표현을 하든지 자신의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든지 이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칭찬해주기입니다. ‘잘하고 있다’라고 다독여주세요.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난 이걸 원한다’, ‘해주길 바란다’라고 표현하세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데 이 방법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상대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은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반대로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은 그렇질 못합니다. 인간의 본성입니다.

나의 고민은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문제입니다. 내면의 문제를 누군가가 굳이 대신 해결해줄 것이 아니므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마음의 문을 닫곤 하는데 그러지 마시길 바랍니다. 남자들은 ‘내가 약해지면 남들이 나를 만만하게 볼 것’이라고 여겨 불안해합니다. 그 마음부터 버려야 합니다.

Q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는 시기, 마흔이 됐지만 제 삶은 여전히 무기력합니다.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즐겁지가 않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공허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김○○, 40, 군인)
나이 듦과 상관없이 남자들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입니다. 마음은 20대인데 체력이나 현실적인 환경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다 보니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흔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벌어지는 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어떤 이들은 이상을 좇습니다.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오랜 꿈이었던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대표적인 사례죠.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았나’ 하는 회의감 탓에 일상이 퍽퍽합니다. 희망과 환상은 다른 것입니다. 그걸 구분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여자와 연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업도 성공할 거 같고… 그런 환상을 갖지 마세요. 삶의 방향을 현실적으로 다시 설정하세요.

우리나라 남자들의 경우 30~50대에 우울증 비율과 공황장애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남자들의 우울증은 여자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처음부터 명확하게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를 찾는 분들은 극히 드뭅니다. 잠이 오질 않는다, 분노 조절이 되지 않는다, 건강검진엔 이상이 없는데 몸이 피곤하다 등 다른 원인을 이유로 찾습니다. 우울감을 회복하는 해결책은 하나입니다. ‘나이를 먹는구나’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는 최소 3~5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좋아집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고 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확실히 증상이 완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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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김병수 전문의는…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 최초로 이라크 자이툰 병원 정신과 과장으로 근무했으며, KBS-2TV ‘남자의 자격’에서 ‘남자, 그리고 중년의 사춘기’라는 미션으로 출연자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 명쾌한 분석을 들려주기도 했다.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김성구, 안지영 ■참고 서적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김병수 저, 프롬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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