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울 강남구 자곡로에 위치한 130㎡(40평) 아파트로 이사한 안희진씨. 서양적인 건축물인 아파트를 한옥으로 꾸미게 된 것은 한옥에 살고 싶다는 그녀의 오랜 꿈에서 시작됐다. 그동안 크고 작은 옹기와 한옥 문살, 서랍장, 다듬이판 등 전통 소품을 취미로 모으고 있었는데, 아무리 예쁘게 집을 꾸며도 어딘가 아파트와는 어울리지 않은 느낌. 한옥 단독주택에서 살기를 원했지만 전통 한옥은 나무를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칠을 해줘야 하는 등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 이사를 망설였다. 그러던 중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이를 한옥으로 변신시키기로 결심했다.
아파트를 한옥 스타일로 꾸민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자재 선정부터 난감해했고, 어디까지 한옥을 접목시키면 좋을지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 한옥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찾다가 현대식 건물에 한옥 스타일을 접목한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시공하는 곳을 발견, 아파트의 편리함은 남기고 집 안 곳곳 한옥이 느껴지도록 구조 변경을 요청했다. 창부터 천장, 조명까지 컨셉트에 맞춰 모두 맞춤 제작하기 때문에 아파트 내 한옥 시공은 일반 공사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디자인부터 시공하는 데 약 한 달의 시간이 걸렸고, 수십 번의 미팅 끝에 지금의 집이 완성됐다.
이 집에서는 한옥의 실내외 특징을 모티브로 곳곳을 꾸민 아이디어가 무척 돋보인다. 복도 벽면은 한지와 벽돌로 꾸며 한옥의 담벼락을 형상화시켰고, 집 안의 모든 문에 창살 문양을 살렸으며, 거실 천장은 서까래 대신 격자무늬의 커다란 조명과 나무 소재로 꾸몄다. 베란다 안쪽 창은 나무로 창살을 만들고 한지 창호를 덧댔다. 한지 창호는 일반 유리보다 단열 효과가 뛰어나고 잘 찢어지지 않으며 자연광을 은은한 확산광으로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덕분에 어느 한옥의 방 안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거실 베란다는 확장한 다음 그 부분에 높이를 달리한 서잡장을 둬 작은 툇마루를 연출했는데, 인테리어는 물론 공간 활용효과도 크다. 바닥재는 무난한 원목 마루 대신 한옥 공간의 특징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특별한 소재를 선택했다. 포르투갈 수입 제품인 코르크 바닥재를 사용한 것. 코르크 소재 특성상 공기층이 있어 습도 조절 효과가 있으며, 겨울에도 차갑지 않을 뿐 아니라 쿠션감까지 갖췄다.
안희진씨는 한옥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으로 편안함을 꼽았다. 현관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면 나무 향이 풍겨 나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뿐 아니라 나무가 주는 자연적인 느낌이 힐링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시골집에 온 듯한 편안함 덕분에 그녀의 집은 아파트 단지 내 명소로 떠올랐고, 이곳을 방문한 단지 내 몇몇 집주인도 한옥 스타일로 아파트를 개조했다. 아무리 편안하다고 하더라고 아름답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진행 / 이서연 기자 ■사진 / 장태규(프리랜서) ■시공 / 한옥공간(031-764-9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