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 장보리, 김순옥 작가가 전하는 승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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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리’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주말 저녁 8시 45분만 되면 누가 따로 불러 모으지도 않았는데 가족들은 모두 TV 앞에 앉는다. MBC-TV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가 시청률 30%를 넘기며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요즘 드라마 시청률은 시청자와의 한판 승부다. 잡힐 듯 말 듯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한 회 한 회, 숨 넘어 가야 한다. 마치 ‘밀당’을 하듯 말이다. 승리를 눈앞에 둔 김순옥 작가를 만났다.

이겼다! 장보리, 김순옥 작가가 전하는 승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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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리’, 전작들과 다르다
MBC-TV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는 시청률 30%를 넘기며 주말 안방극장을 후끈 달구고 있다. 그럼에도 김순옥(43) 작가는 자신을 막장 드라마 작가로 폄하하는 시각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했다. 이러한 시각이 고개를 내민 것은 SBS-TV 드라마 ‘아내의 유혹’, ‘천사의 유혹’이 한몫을 한다. 매회 말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흥미로운 드라마였지만 불륜, 이혼, 복수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죽기로 결심하고 한강 다리에 다리 한쪽을 걸쳐놨는데 보던 드라마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살짝 내려놓게 만드는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에요.”

이번 작품 ‘왔다! 장보리’는 막장 요소 없이 충분히 재밌는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작정하고 쓴 결과물이다. ‘왔다! 장보리’가 전작과 다른 이유, 무엇일까?

주중 드라마와 일일극, 주말극을 통틀어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인기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캐릭터의 힘인 것 같다. 장보리(오연서 분)는 배운 것은 없지만 뭔가 깨달음을 주고 밝은 성격을 지녔다. 요즘 드라마는 너무 무겁고 어두운 게 많다. 세상도 어두운데 드라마까지 어두우면 답답하지 않을까. 장보리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에 욕도 정겹게 뱉으며 할 말 다 하는 거침없는 성격이다. 여기에 장보리와 사랑에 빠지는 이재화(김지훈 분)도 친근한 캐릭터다. 재벌 아들에 검사지만 그런 신분과 상관없이 ‘허당’ 모습을 보여준다. 시청자가 뭔가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뒀다. 또 보리와 재화는 둘 다 낳아준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 손에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사랑을 키워나가는 이 두 사람을 시청자들이 응원하면서 보는 것 같다.

이겼다! 장보리, 김순옥 작가가 전하는 승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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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이라는 비난에서 이전에 비해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주 참신해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은 인간관계, 거기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새로운 이야기보다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 드라마를 보면 이야기의 원형이 있다. 고대 설화나 소설에서 이야기의 기본적인 뼈대를 찾는다. ‘아내의 유혹’의 경우 조선 숙종 때 김만중이 지은 「사씨남정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오랜 시간 회자되고 구전으로 전해진다는 건 그만큼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방증 아닌가.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느낀다. 왜 그런 생각, 감정을 가지게 됐을까, 궁금증을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그 구조를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판에 박힌 거라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는 90%의 감정을 토대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10%를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비율이라고 본다. 아주 새로운 걸 시도하면 사람들은 보려고 하지 않는다. 추리·수사물 같은 장르물이 넘쳐나면서 젊은 세대 시청자를 겨냥하고 만드는 드라마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 아빠도 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초등학생까지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 우선 내 드라마는 주말극으로 편성을 받은 만큼 전 연령대가 쉽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 했다. 아이가 재미있게 보는 장르물을 나도 봤는데, 재미는 있지만 한편으론 또 빠져들기 힘든 지점들이 있었다. 그런 지점들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애청자들 사이에 드라마가 또 다른 제목으로 불리고 있다. 바로 ‘왔다! 여민정’이다. 여민정 역을 맡은 배우 이유리의 탁월한 악역 연기 덕에 그녀만 나오면 눈을 뗄 수도 없이 침만 꿀꺽 삼키며 화면을 주시하게 된다. 이유리가 악에 받쳐 ‘문 실장’에게 화를 분출하는 장면은 “마치 칸 진출작의 한 장면 같았다”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덕분에 그녀는 길을 걷다 보면 몇몇 사람들에게 싸늘한 눈총을 받는다며 인터뷰를 통해 투정 섞인 속내를 털어놓은 적도 있다.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악역을 맡은 배우 이유리에게 미안하지는 않나? 본의 아니게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이유리씨가 “나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 중 한 명이고, 개인적으로 어설프게 착한 척하면서 선악의 경계선에 모호하게 걸쳐 있는 사람은 싫어한다. 확실한 캐릭터를 원하고 드라마가 잘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을 이용해달라고 했는데, 고마웠고 그 말을 믿고 갔다. 일단 그녀의 연기를 무척 좋아했다. SBS-TV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의 주인공으로 나올 때 연기를 보고 반했다. 아이도 안 낳아본 사람이 엄마의 감정을 정말 실감나게 표현하더라. 저렇게 연기하는 배우 찾아보기 힘든데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다. 예쁜 척만 하는 일부 여배우들과 달리 진심으로 갓난아이를 사랑하고 예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존 악역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길 원했나?

케이블 채널 드라마 ‘노란 복수초’를 보면 이유리씨가 뭔가 슬픔이 있는 악역을 연기했다. 악역이 정말 중요하다. 소리 지르고 눈만 부릅뜬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유리씨가 연기한 민정이는 슬픈 사연이 있다. 열심히 뭔가를 해서 상황을 극복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은 거다. 아빠는 술주정뱅이에 엄마는 국밥집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패배감이 깊이 사무쳤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정말 열심히 살지만 제일 불행하다. 한 번 시작한 말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해야 하고, 수양어머니, 아버지에게도 버림받는 모습이 좀 짠하지 않나 생각한다.

‘또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이 다시 나올 수도 있는데 출생의 비밀을 2개나 겹쳐놓았다. 무슨 의도가 있는 건가?

핏줄로 맺어진 인연이면 모든 걸 다 용서해줄 수 있는 것인지, 반대로 핏줄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어도 사랑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도씨(황영희 분) 입장에서는 보리가 데려온 자식이지만 결국 자기 자식이 되지 않았나. 물론 처음에는 친딸 민정(이유리 분)에 대한 사랑이 더 강했다. 그런데 20년 넘는 세월을 보리와 부대끼고 살면서 보리도 내 살이 된 것이다. 꼭 혈연을 통해서만 인간관계가 성립이 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화(김혜옥 분)나 민정이는 혈연도 내팽개치고 자기 욕망을 위해서 달려가지 않나. 물론 각자 나름의 사연이 있었지만. 인화와 민정이는 닮은 데가 많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그걸 극복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고 실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정상에 오른다. 그래서 핏줄도 아니지만 인화와 민정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한편으로 민정은 성공을 위해 친딸 비단(김지영 분)을 버렸고, 침선장이 되고 말겠다는 열의만 있던 인화는 보리를 방치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거기서 반대로 묘한 사랑이 피어나는데 친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보리는 비단이를 거둬 어렸을 적 못 받은 사랑을 듬뿍 준다. 그러면서 비단이도 참 밝고 꿋꿋하게 자라지 않나. 그런 점에서는 보리와 비단이가 닮았다.

이겼다! 장보리, 김순옥 작가가 전하는 승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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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장보리’에서 주목할 부분은 모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기도 하다. 본능적이고 촌스럽지만 헌신적인 모성애로 딸의 악행을 돕는 엄마, 출세를 위해 친딸을 버리는 엄마, 반대로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엄마, 냉정한 잣대와 계산으로 친딸을 대하는 엄마. 작가는 결국 ‘엄마’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듯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무심한 엄마에게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내던 어렸을 적 보리도 그렇고, 친엄마 민정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숨기는 비단이도 그렇고 아이들이 더 어른스럽다. 마치 우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였을 때가 인간의 가장 순수한 때이지 않나. 어렸을 적 보리나 비단이를 보고 어른스럽다는 말들을 하는데, 내가 생각할 때는 엄마가 좋아 자신의 모든 걸 주려고 하는 보리나 비단이의 마음이 정말 아이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어른들은 뭘 하든 수지타산을 따지고 행동하지 않나. 아이들은 그런 게 없다. 그런 건 오히려 어른들이 배워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아역들의 연기에서 판타지적인 요소를 구현하고 싶었다.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희생적이고 순수한 마음의 회복, 이걸 말하려던 거다. ‘왔다! 장보리’가 기존에 내가 썼던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찌됐건 주인공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리와 비단이 모두 복수를 하지 않는다. 설령 시청률이 안 나온다 할지라고 주인공의 복수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요즘 거꾸로 욕을 먹는다. 왜 이렇게 주인공들이 답답하냐고, 바보 아니냐고. 그래도 보리는 할 말 다 하는데… (웃음).

무조건적인 희생은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나?

맞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것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다. 고3 아이가 있는데 방치 상태로 두는 엄마인 것 같다. 수시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지만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큰 교육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있다. 자기 자식에게 모든 걸 쏟아 붓는 사람들을 방송을 통해 보게 되면 ‘저러면 안 되는데’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깊게 생각해보면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으면서 희생해야 아이들이 사랑받으면서 자란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며, 자신감도 생기고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일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다 하는 고민일 것이다. 나도 늘 고민이다.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헷갈린다.

이겼다! 장보리, 김순옥 작가가 전하는 승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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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은 부모, 자식 간 사랑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떤 모성애를 그리고 싶었나?

도씨가 민정이에게 베푸는 무조건적 사랑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도씨라는 캐릭터는 딸을 부잣집으로 시집 보내놓고도 그럴듯한 옷 한 벌 받지 못했다. 물론 딸을 위해 거짓말을 하지만 적어도 자기를 위해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 그저 내 새끼 잘 살아보게 하겠다는 일념뿐이다. 도씨 같은 헌신적인 캐릭터가 있는 반면 보리 엄마 같은 모성애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이 다른 모성애라고 할 수 있겠다. 인화는 내가 먼저고 자식을 위해 다 희생하지는 않는 그런 엄마다. 자식 때문에 뭔가 손해를 볼 것 같은 상황에서 친딸과 갈등하고 냉정하게 구는 면모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 말미에 다른 방식으로 보리 엄마 인화에게도 강한 모성애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현실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주인공에게 공감하거나 악역과 대치해 분노한다. 요즘 현실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를 대신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순옥 작가는 미적지근하지 않아서 좋다. 시청자가 간지러워하는 바로 그곳을 확실하게 긁어준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승전보를 울린 그녀. 다음은 어떤 재미난 작품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면, 너무 이른가?

■기획 / 이유진 기자 ■글 / 박효재(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사진 제공 / 김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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