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만에 컴백 박준희, 다시 노래하다

17년만에 컴백 박준희, 다시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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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17년 동안 한순간도 음악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양한 인생의 무대에서 부지런히 스스로를 담금질해온 시간들, 마침내 다시 가수의 자리로 돌아온 박준희의 노래에는 삶과 음악에 대한 깊은 내공이 담겨 있다.

17년만에 컴백 박준희, 다시 노래하다

17년만에 컴백 박준희, 다시 노래하다

1992년 댄스곡 ‘눈 감아봐도’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딛은 박준희는 세련된 외모와 성숙한 음색을 가진 여고생 가수로 주목받으며 단숨에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다. 그 후 김영완, 김송 등과 함께한 그룹 ‘콜라’의 리드 보컬로 ‘모기야’, ‘우울한 우연’ 등을 히트시키며 활동을 이어가던 중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가요계를 떠났다. 당시 그녀의 나이 스물셋이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4년 여름, 그녀가 새 앨범 「My History」를 들고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오로지 꿈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열아홉 소녀는 이제 인생의 희로애락을 아는 나이가 됐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은 더욱 뜨거워졌다.

17년 만의 컴백입니다. 오랜만에 가수로 돌아온 소감이 남다르겠어요.
사실 다시 노래하게 되기까지 이리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어요. 신기하게도 바로 어제까지 활동했던 사람처럼 내 집을 찾아온 듯 편안한 기분이에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고 반갑게 맞아주셔서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그동안의 근황을 묻지 않을 수 없어요. 무대를 떠나 있는 동안 작가, 칼럼니스트, 음악감독, 강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바쁘게 살아오셨더군요
가요계를 떠났던 이유가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어요. 댄스 가수는 제가 원하던 길이 아니었거든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게 감당이 되지 않더군요. 나중에 내가 다시 음악을 하게 되면 내 힘으로 모든 걸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음반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을 겪어보기 위해 음반 기획도 해보고, 좋은 가사를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전문적인 글쓰기를 배우기도 했어요. 방송 시스템을 알기 위해 인터넷 방송 PD겸 DJ도 했었고, 음악에 대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10여 년 동안 가수를 꿈꾸는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다시 노래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다시 돌아오게 된 시기가 지금이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그동안 ‘언젠가’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특별한 시기를 두고 준비했던 건 아니에요. 내 스스로 곡을 쓰고 기획하고 만들어낼 수 있을 때쯤, 막연히 흰머리가 날 때쯤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보다 빨리 왔네요(웃음). 마흔을 넘기며 마흔앓이를 지독히 했어요.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겁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리고 더 이상 노래를 안 하고 살 수 없을 만큼 가슴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어요. 이제 묵힐 만큼 묵혔으니 썩기 전에 꺼내야겠다는 맘이 생긴 거죠.

새 앨범 「My History」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총 6곡 중에 5곡의 가사를 제가 썼어요. 어렸을 때부터 외국 뮤지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곡으로 만들어 부르는 게 참 멋있어 보였거든요. ‘나도 나중에 다시 노래하게 되면 꼭 내 이야기를 해야지’ 했는데 이 나이가 되니 자연스럽게 음악에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게 되더라고요. 타이틀 곡인 ‘My History’ 가사 중에 ‘페이지마다 행복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 마침표는 안 찍었으니까’라는 대목이 있어요. 힘든 고비를 넘겨가며 사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물론 그게 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을 쓰신 남편 홍지유씨 역시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보아, EXO의 곡들을 작사한 뮤지션입니다.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부부로서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여러 음악 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만나게 됐는데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더라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음악 하는 사람들을 참 좋아하거든요. 음악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 산다는 게 좋아서 자주 만났죠. 그러다 보니 정도 들고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사실 음악 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음악 하는 사람이었죠. 제 이상형이 착한 남자거든요. 남편은 제가 만난 남자 중에 가장 착한 남자예요.

노래를 들어보니 데뷔 당시의 음색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런데 무언가 위로받는 느낌이에요.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나이 들어 살아온 경험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일부러 힘들게 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할 말이 많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노래에도 묻어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마흔앓이’를 호되게 겪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우울증을 크게 앓았어요. 헌 전기 코드를 새 코드로 바꿔 끼워야 하는데 마구 엉켜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열정적으로 사랑할 나이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고, 미친 듯이 일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해 보였어요.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마흔이 마지막 기회겠구나 싶더라고요. 모두가 올라타 있는 시간이라는 기차에 순순히 올라타기 싫어 버티고 있었는데 마흔이라는 나이가 딜을 한 거죠. 기차에 올라타면 노래할 수 있는 용기를 주겠다고요. 그래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러고 나니 그동안 망설였던 것들에 도전할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마흔이라는 나이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군요.
길고 긴 인생 중에 한 3, 4년쯤 사라져도 티 안 나요. 그런데 우리는 하루, 일주일, 한 달을 걱정하며 살고 있어요. 한 번쯤은 다 내려놓고 진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혼자만의 여행도 좋고 자기만의 시간도 좋아요. 자기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자라면 40대 이후의 삶이 정말 희망적이고 흥미로울 거예요. 현실 탓, 환경 탓, 남 탓만 하다가는 영영 기회를 잡지 못할지도 몰라요. 지금 당장 일주일 정도 배낭여행을 갈 자신이 있다면 당신의 미래는 희망적이에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세요.

앞으로 계속 박준희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전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에는 미련이 없어요. 이미 그 짧은 순간 뒤의 고독과 외로움을 겪어봤기 때문에 인기에 집착하고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아요. 내가 먼저 사람들을 찾기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제 음악과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전 이제야 저의 음악을 시작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모조리 다 해볼 생각이에요. 제 음악에 자양분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은 채로 말이죠.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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