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현정 다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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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은 말했다. 자신의 가슴속에는 보여줄 게 많다고, 끄집어내고 싶은 게 많다고. 그 뜨거운 어떤 덩어리를 다 꺼내지 않고서는 스스로 답답해 살아갈 수 없다면서 말이다. 바로 연기다. 그래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숨쉬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다시 날기 위해서!

배우 박현정 다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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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41)을 오랜만에 만난 곳은 연극 무대였다. 처음 무대에 선다는 그녀는 연극의 클라이맥스 파트를 맡고 있었다. 공연장을 단숨에 눈물바다로 만들어버릴 만큼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신이다. 연극 ‘여보 나도 할 말 있어’에서 남편과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예쁜 춘자 역을 맡은 박현정은 극 후반 남편의 외도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형님, 아우 하고 지내는 찜질방 친구와 머리채도 잡고 싸운다. 하지만 정작 춘자가 싸웠던 건 가면과도 같았던 자신의 삶이었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그대로 둔 채 독백으로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는 박현정의 연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목이 메게 했다. 그야말로 배우도 울고, 관객도 운다.

“춘자가 독백하는 신은 감정신이거든요. 그런데도 우는 관객들을 보면 제가 더 눈물이 나요. 저분들도 내 마음을 아는구나. 춘자 마음을 아는구나. 나처럼 힘든 게 있구나. 모양만 다르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 관객들은 80, 90%가 우시고요. 남자 관객들도 의외로 많이 눈물을 보이시더라고요. 많이들 찔려 하시면서요(웃음).”

장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는 건지, 인터뷰를 하던 박현정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고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가 얼마나 극에 몰입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극에 대해,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현정은 무척 밝았다. ‘연기가 그렇게도 좋은가? 연기자는 뭐가 달라도 다른가 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연기의 뜨거운 생명력, 그것의 매력을 연극을 통해 다시금 알게 됐다고 했다.

“제 일상이 힘들어도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할 때 관객분들이 울고 웃으면서 호응해주시면 진짜 신나서 막 날아다녀요(웃음).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스스로 날아다니는 게 느껴져요. 어디선가 에너지가 막 솟아요. 더 못 줘서 안달이 나는 느낌이요. 아주 뜨거운 그런 감정이 있어요. 그 느낌이 정말 좋아요. 그게 제가 연기를 하는 이유예요.”

연극을 통해 다시금 연기 열정에 불이 붙었다는 박현정은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더 많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TV 드라마와 달리 관객의 피드백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무대가 배우 박현정이 가지고 있던 연기에 대한 목마름을 적셔주고 있는 듯했다. 관객에게 사랑받는 배우처럼 행복한 이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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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길? 입사시험 보러 가던 차에 우연히
1995년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 출신인 박현정은 어떻게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됐을까. 데뷔와 동시에 이른 결혼을 했기 때문에 배우로서 활동한 시간은 사실 많지 않다. 슈퍼탤런트 선발대회에 지원했을 정도면 짐짓 요란한 준비 과정이 있었을 법한데, 본격적인 연기자 활동을 하지 못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하지만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준비란 걸 해본 적도, 연기를 배우기는커녕 연기자의 꿈조차 꿔본 적도 없었단다.

“어렸을 때부터 있는 듯 없는 듯 티 나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어요. 충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서울에 있는 대학 대신 집 가까운 국립대인 충북대 역사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래도 연예인인데 뭔가 특별한 게 있었겠지’ 하고 아무리 물어보셔도 정말 평범했어요. 제가 슈퍼탤런트가 됐을 때 온 동네가 난리가 났어요. 좋아서가 아니라 놀라서요. ‘쟤가?’ 하시면서요(웃음).”

박현정이 배우가 된 것은 승무원 되려고 입사시험을 보러 서울에 왔던 차에 우연히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 공고를 본 것이 계기였다. 승무원이 돼 항공사에 입사하는 것과 탤런트로 KBS 방송국에 들어가는 것을 똑같이 여겼단다. 충주 집에 내려가 오빠에게 탤런트 선발대회 이야기를 하니 “네가 무슨?”이 아니라 선선히 “한번 해봐”라고 격려해줬다고. 직접 충주 KBS에 가서 지원서를 가져다준 사람도 오빠였다.

“오빠랑 옥상에 올라가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안고 프로필 사진을 찍었어요. 남들은 전문가 메이크업에, 예쁜 옷을 입고 완벽하게 찍었을 텐데, 저는 아무것도 몰라서 누렁이 안고 찍은 사진을 제출했어요(웃음). 면접 조건이 민낯에 흰색 반팔 티와 반바지 입고 오라는 거였는데, 가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온 사람은 저뿐이더라고요. 아마 촌스러워서 튄 것 같아요.”

될 사람은 된다고 했던가. 탤런트 선발대회 일화 속 박현정이 딱 그랬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은 당연히 합격이다. 3차 최종 면접 날짜는 항공사 시험 날짜와 같았다. 또 당연히 이야기의 주인공은 탤런트 선발대회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당시 항공사 시험은 일 년에 두세 번 있었기 때문이다. 탤런트 시험에서 떨어지면 다시 응시할 생각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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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도 결혼도 다 운명이었겠지
평생 배우의 꿈을 꾸며 준비한 분들에겐 미안한 말이라며 박현정은 자신은 배우나 연기자, 연예인을 철저히 직업으로 선택했다고 했다. 항공사에 입사해 월급을 받는 것과 방송국에 들어가 출연료를 받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 급했을 뿐이다. 연기에 대한 열망, 대중의 환호, 벼락스타 같은 것은 그려보지도 않았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보면서 ‘나도 TV에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는 그런 부러움은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그것을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할 생각도 못했어요. 탤런트 선발대회 무대에서 처음으로 콩트 연기를 했는데요. 얼마나 못했는지, 속상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 가족들에겐 나 TV 나오니 다 보라는 말은 해놓고서 말이에요. 대사가 열 마디였다면 한두 마디나 했을까요?(웃음)”

그렇게 박현정은 탤런트로 ‘입사’를 하게 됐다. 또 그 데뷔 무대에서 전남편 양원경을 만났다. 인터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전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2011년 두 사람은 결혼 13년 만에 남남이 됐다. 이야기를 잇는 박현정은 담담했다.

“서울에 취직 시험 보러 왔다가 탤런트가 된 것도, 또 그 데뷔 무대에서 전남편을 만난 것도 어쩌면 피할 수 없는, 다 정해진 운명 아니었겠어요? 후회는 없어요. 좋아했으니 결혼을 한 거죠. 싫었으면 했겠어요? 지금이나 그때나 제가 바라는 건 화려한 삶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이에요. 그래서 결혼도 신인 시절에 결심할 수 있었죠.”

박현정은 결혼이나 이혼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지금은 세상이 다 알듯 이혼을 했다. 더 할 말이 뭐가 있겠냐고 했다. 또 할 말이 있다 한들 부부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 할 수 있겠냐고 했다. 외려 전남편을 질타하는 악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 건 박현정의 몫인 것 같았다. 그녀는 아이들(중3, 초6 자매를 키우고 있다)에게 늘 말한다고 한다. 사람들의 말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도, 아빠로서의 좋은 모습도 너희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저 연예인의 위치에서 세간의 말에 일일이 해명을 할 수도, 바로 잡을 수도 없음이 힘겨울 뿐이다. 인터넷은 트라우마가 있어 아예 하지 않는다.

“사실과 다른 말들, 왜곡된 소문들이 무성해요. 그래서 뭔가 이야기를 해서 구설을 만들고, 논란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아요. 지나온 세월의 모든 것, 다 사실이고 제 인생이죠. 죽을 만큼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제가 안고 가야 하는 제 삶의 시간일 거예요. 기사 몇 줄로, 몇 페이지로 어떻게 그걸 다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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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로 멋진 ‘진짜’ 배우 될 터
박현정은 이혼 후 3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왕성하게 출연하던 광고 촬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 한 게 아니고 못했다며 희미하게 웃는다.

“아무래도 이미지가 안 좋아졌다고 생각을 하셔서 그러셨겠죠? 정말 일이 뚝 끊겼어요. 일이라도 하면서 현실을 잊고 싶은데 일도 없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혼 후 바로 일했으면 배우로서 제대로 잘해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연극에 캐스팅될 때까지 3년이란 공백 기간이 제게는 꼭 필요했던 것 같아요.”

박현정은 친한 방송작가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앙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고. 또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삶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온갖 물음표들이 느낌표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열심히 살았어요. 천성이 성실하거든요. 한눈팔 줄 모르고, 학창 시절엔 공부 열심히 했고, 대학 가서는 장학금 받으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도 벌었고요. 그야말로 모범생 스타일이었어요. 제 사전에 일탈이란 없었죠. 그런 내가 왜, 내 인생이 왜, 왜 이래야 하는지… 왜 망가져야 하는지 억울했어요. 하지만 신앙을 통해 이제는 알게 됐어요. 그리고 ‘지금의 내가 좋아’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제 삶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됐어요.”

꼼꼼하고 성실한 성격에 가끔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낄 정도라기에 이상형을 물었다. 남자 이상형 말고, 여자 이상형. 그랬더니 바로 “김혜수 선배님과 김희애 선배님이요!”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김혜수의 당당함과 김희애의 단아하면서도 도도한 섹시함이 박현정에겐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했다. 본인 안에도 그런 면이 있고, 또 그렇게 닮아가고 싶은 동경이 있다면서.

“입사시험이라 생각하고 직업인으로 연기자가 됐다고 했지만, 연기는 피할 수 없는 제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무대에 있어야, 카메라 앞에 서야 살아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일은 돈을 아무리 벌어도 뭔가 마음속에 자리한 무거운 게 해소가 되지 않아요. 처음 시작할 땐 몰랐던 걸 이제야 알게 됐어요. 제 안의 뜨거운 어떤 걸요.”

박현정은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그곳에 많은 게 들어 있다고. 100개가 들어 있다면 아직까지 10개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는 느낌을 항상 가지고 살았다. 박현정은 이제부터 ‘배우 박현정’으로 살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미친 역할부터 사악하고 나쁜 역할, 그리고 바보 같을 정도로 지고지순한 역할부터 백치까지 다 해보고 싶어요. 그러면 가슴이 시원해질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 솔직히 부끄러웠어요. 연기 경험도 별로 없고, 실력도 부족했죠. 하지만 열정까지 없진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 다시 신인이 된 기분이에요.”

박현정은 여배우의 삶이 아닌 배우의 삶을 원한다. 예쁘다는 말보단 멋지다는 말이 더 고프다. 소름 끼칠 정도로 멋진 연기로 멋지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그녀의 크고도 작은 소망이다. 그렇게 지금 박현정은 배우로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조인기(프리랜서) ■제품 협찬 / 가가 밀라노·리플레인·RO&DE(02-542-0595), 디누에(02-3444-4756), 몰리올리·톤솜(02-517-0071), 바네미아(070-8899-3290) ■헤어&메이크업 / 혜니, 김수진(ALUU, 02-542-8123) ■스타일리스트 /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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