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여행가 강기태의 My Way

트랙터 여행가 강기태의 M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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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아니고 무려 트랙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유별난 남자. 국내 유일의 트랙터 여행가이자 여행대학 총장인 강기태씨가 자신만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트랙터 여행가 강기태의 My Way

트랙터 여행가 강기태의 My Way

그를 만나기 위해 두 달을 기다렸다. 처음 섭외 전화를 했을 때 그의 동료는 “지금 트랙터로 미얀마를 여행 중이다”라고 소식을 전했다. 꽤 오랜 시간 후에 돌아온다고도 했다. ‘직업이 여행가라서 역시 여행 중이군’ 싶으면서도 못내 아쉬웠다. 단순히 여행기를 듣고 싶었다면 다른 여행가를 만나도 됐겠지만, 고집스럽게 트랙터를 타고 여행하는 이유부터 여행대학이라는 기발한 곳을 만든 사연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의 귀국일이 지나 부랴부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행 끝났으면 우리 좀 만나요!

스물셋의 결심
빛바랜 청바지와 어디든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워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배낭, 푹 눌러쓴 모자까지. 인터뷰를 하러 나온 사람이라기보다는 여행길에 나선 이 같은 차림으로 강기태(33) 여행대학 총장이 나타났다. 이제 막 미얀마 트랙터 일주를 마치고 돌아와서인지 검게 그을린 모습이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여행에 푹 빠졌어요. ‘여행광’ 소리를 들을 만큼 방학 때마다 국내외를 쏘다니면서 여행을 하다 보니 내 길이 이거다 싶더라고요. 한국교원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다니고 있긴 했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은 없었어요. 결국 대학교 4학년 때 나의 20대는 여행가로 살겠다, 라고 다짐했죠.”

그는 대학생 시절 다양한 여행을 마스터했다. 도보, 자전거, 자동차, 오토바이 등 모든 수단을 다 거쳐봤다. 그것이 트랙터를 택한 이유가 됐다. 이미 경험한 것 말고 새로운 여행 방법을 고민한 것이다.

“여행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직업 여행가가 되려면 나만의 색깔이 꼭 필요했어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다는 욕구도 컸고요. 나와 어울리는 방식을 고민하다 보니 경남 하동 농촌에서 나고 자란, 농부의 아들인 제 정체성과 트랙터가 잘 어울리겠다 싶었죠. 잘 몰라서 그렇지 트랙터 타고도 충분히 여행이 가능해요. 에어컨, 히터 다 있고 짐은 트랙터 뒤 짐칸 달아 실으면 되거든요.”

농부 아버지는 아들에게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갈했다. 주변에서도 모두 우려했지만 그럴수록 더 오기가 생겼다. 트랙터를 구하기 위해 강 총장은 여행 계획서를 만들었다. 트랙터를 자비로 살 수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응원을 얻어 여행을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대표 트랙터 회사 다섯 군데의 문을 모두 두드렸다. 계획서를 손에 들고 트랙터 회사 건물로 들어설 때는 긴장한 나머지 식은땀이 흘렀고, 준비해온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덜덜 떨었다. 마침내 어렵게 한 트랙터 회사의 담당자와 미팅을 하게 됐는데,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제 얘기를 다 듣더니,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곧 연락드릴게요’ 하시는 거예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뻤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 거절의 말이었더라고요. 전화도 피하고, 연락도 없었어요. 그 후로도 그런 말을 숱하게 듣게 될 거란 걸 그땐 몰랐죠(웃음).”

실패한 적이 더 많은 성공한 여행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렸다. 3년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중 한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트랙터 여행가로서의 삶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2008년 9월부터 180일 동안 전국 곳곳을 누비며 트랙터로 전국 일주를 해냈다. 농촌에서 밥 얻어먹고 잠자리 빌려 자고 일손을 보탰다. 워낙 친화력이 좋아서 지역민들과 스스럼없이 금방 친해졌다. 자동차에 비해 속도가 잘 나지 않는 트랙터. 그를 무모하게 바라보던 이들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색다른 여행가의 등장에 조금씩 눈길을 주었다. 트랙터 회사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내 유일한 트랙터 여행가로 그의 이름이 점점 알려졌다.

국내 일주에 성공하자 이제는 해외도 트랙터로 달려보고 싶었다. 그를 눈여겨보다가 손을 내민 또 다른 트랙터 회사의 도움을 받아 2012년 6월부터 100일간 터키 일주에 성공했다. 1만km를 트랙터로 내내 달리면서 꿈이 이뤄진 순간의 짜릿함을 맛봤다. 이후 그는 2013년 5월부터 4개월간 중국 트랙터 여행을, 올해 2015년 5월부터 3개월간 미얀마 트랙터 여행에 성공했다. 터키 여행 때는 현지 신문 1면에 인터뷰 기사가 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무려 26개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트랙터를 탄 사나이는 어디 가나 인기 폭발이었다. 트랙터에 시동을 걸기는 어려웠을지라도 첫 여행 이후부터 현재까지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 같다고 하니, 강 총장은 고개를 저었다.

트랙터 여행가 강기태의 M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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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성공한 여행 이야기만 언급돼서 그래요. 나머지는 모두 실패담뿐인걸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매 순간이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실크로드 횡단, 유라시아 횡단, 미국, 브라질 모두 준비하다가 엎어졌어요. 어떤 때는 후원 회사의 사정으로, 트랙터 반입 허가 비자가 안 나와서, 위험하다는 반대에 부딪혀서 등등 이유도 제각각이었어요. 세상사가 나 혼자 준비가 됐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이뤄질 때까지는 모든 상황과 ‘운대’까지 맞아야 한다는 걸 배웠죠.”

트랙터로 여행하면서 강 총장은 자신이 농사꾼의 아들이란 것이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중국 일주를 할 때는 트랙터 회사와 중국 당국의 도움으로 머무는 곳마다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농업이 얼마나 중요한 산업인지 알리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타국에서 온 특이한 청년에게 귀를 기울여줬다. 먼 곳까지 트랙터를 몰고 온 보람이 있었다.

여행대학
국내 유일한 트랙터 여행가로 이름을 날리면서 자리를 잡고 나자 또다시 새로운 도전이 하고 싶어 근질거렸다. 트랙터가 혼자 돋보이는 여행이라면, 이번에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여행을 논해보고 싶었다.

“여행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여행대학’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어요. 그동안 주변에서 받은 과분한 도움을 이제는 다시 나눠야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제 가장 큰 자산은 혼자 트랙터를 협찬받고 국내외를 일주하며 얻은 ‘경험’이니까, 저의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전수하기로 했죠.”

2014년 여행대학의 문을 열었다. 대학을 만들었더니 ‘총장’이란 호칭도 얻었다. 여행가 27명을 불러 모아 멘토 군단을 결성했다.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여행 강의를 해줄 선생님이었다. 식상한 이야기는 하기 싫어 도보여행학과, 무전여행학과, 공짜여행학과 등 톡톡 튀는 학과로 꾸렸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공짜여행학과는 강기태 총장처럼 후원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훈련시키는 학과다. 강 총장 자신이 실전에서 협찬을 받을 때 사용했던 여행 계획서 포맷을 제공해 학생들이 저마다의 목표에 맞게 수정해서 여행 계획서를 만들어 직접 기업에 보내 협찬을 받아보는 공부를 한다.

“처음엔 당연히 실패하죠. 수십 번 실패할걸요?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자신의 계획을 성공시켜보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여행도 그래요. 만일 오지 캠핑을 가보고 싶은데 두렵다면 가볍게 옥상 캠핑, 한강 캠핑부터 시도하다가 점점 넓혀가보는 거죠. 처음부터 100% 만족하는 여행은 없어요. 몇 번씩 시도하면서 점차 시행착오를 줄여가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야죠.”

강 총장은 밤 10시에 만나 새벽 6시까지 서울을 걷고 이야기하며 여행하는 서울야반도주학과와 하동이 고향인 사람답게 하동 여행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하동에는 여행대학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용 게스트 하우스도 만들어뒀다.

여행대학은 입학부터 졸업까지 3개월 동안 격주로 멘토의 강의를 2개씩 듣는 시스템이다. 이곳을 거쳐간 학생들은 현재 3기까지 350명.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모두 ‘나만의 여행’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블로그 검색으로 추천 여행지를 검색하고 남들이 사진을 찍은 ‘포토존’에서 똑같이 사진을 남기고, 비슷한 맛집에서 역시 비슷한 음식을 먹는 여행이 판을 치는 요즘 시대. 여행대학의 문을 두드린 사람들은 모두 이런 흔한 여행 말고 좀 색다른 여행을 원했다.

“유명 관광지에 가서 남과 비슷한 여행을 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순 없어요. 그렇지만 적어도 그런 성격의 여행 말고 맞춤옷처럼 자신의 욕구에 딱 들어맞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우선 스스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요.”

여기 온 학생들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 제일 잘 맞는 여행 스타일이 뭔지 고민해보고 그 생각을 발전시켜 여행 계획서를 만들기도 한다. 남들 눈에는 하찮아도 자신에게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아 여행 목표로 세우기도 한다.

트랙터 여행가 강기태의 M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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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구를 파악해라
문득 여행대학 학생들은 어떤 여행을 꿈꾸는지 궁금해졌다. 자발적으로 여행에 대한 생각으로 모일 정도로 여행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라면 뭔가 남다른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사람들이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가요. 미대생들은 그림 여행을 한다고 해요. 스케치 몇 장을 완성해오겠다, 골목을 모조리 그려오겠다 등 목표를 세워요. 문화 유적지를 돌아보는 문화 역사 여행, 숲이나 공원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가겠다는 자연 여행, 가는 곳이 어디든 봉사를 하고 싶다는 선행 여행도 있었고요. 가는 곳마다 지역 사람들과 파티를 하겠다는 파티 순회 여행을 말하는 친구도 있고요.”

강 총장도 트랙터 여행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목표가 있는 여행을 종종 시도한다. ‘리어카’를 끌고 국내 180km를 도보로 여행한 적도 있었다. 네팔에서 부모 없는 아이 10명을 조카로 삼았는데, 네팔 현지를 여행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간다는 얘기에 마음이 아파 도전한 여행이었다.

“‘강기태가 리어카를 끌고 180km를 걸어서 여행합니다. 1km마다 100원씩 후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제 SNS에 올리고 리어카 끌고 떠났어요. 저를 믿어주는 지인 100명에게 부탁했는데, 그렇게 후원을 받으면 1인당 1만8천원씩 후원해주시는 거거든요. 그걸 모아서 네팔 조카들 여행시켜주는 데 성공했어요. 여행으로 남을 돕는 일도 가능하다는 걸 알리게 돼서 뿌듯했죠. 걸을 때는 하도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없고 멍했지만요(웃음).”

부담을 지우면 즐겁다
그는 가볍게 훌쩍 떠나는 여행도 즐긴다. 여행은 마음이 동할 때 작게라도 시도해야 정신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낭에 여권을 늘 갖고 다녀요.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언제든 떠나기 위해서요. 여행이라고 해서 꼭 복잡하게 모든 걸 준비할 필요는 없어요. 현금카드, 여권, 노트북, 휴대폰 이렇게 4가지만 있으면 언제나 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됐으니까요!”

강 총장은 또 여행에 대한 지나친 준비와 기대감이 여행을 망친다고 조언했다.

“수도 없이 여행을 다녀봤지만 어떤 경우든 100% 계획대로 되는 게 없더라고요. 특히 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범하는데,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갖춘 다음에 떠나려고 하지 마세요. 그 무게에 짓눌려서 결국 가벼운 여행도 떠나기 어려워져요. 생각한 것의 4분의 1만 준비되면 바로 길을 나서세요. 필요한 모든 건 집 밖에도 있답니다.”

세계 각국을 다니다 보니 요즘 외국의 젊은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는지도 알게 됐다. 대부분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는 실속 있고 합리적인 여행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카우치 서핑’, ‘에어 비앤비’가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라고. ‘카우치 서핑’은 단어 그대로 몸을 뉘일 수 있는 소파 하나를 찾는 여행자들을 위한 세계의 무료 숙박 제공 서비스다. 여행하고자 하는 지역에 사는 현지인의 집에 공짜로 묶을 수 있다. ‘왜 돈도 안 받고 재워주지?’ 싶을 수도 있지만 타인과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이 숙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신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나름의 준비를 해가는 것이 관례고, 집주인은 간단한 음식을 대접하는 편이다. ‘에어 비앤비’는 현지인이 집을 비우면서 여행자들에게 빌려주는 형식이다. 호텔보다 저렴하고 현지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이런 여행 방식은 분명 뚜렷한 매력이 있지만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반드시 사용자들이 남긴 리뷰를 상세하게 읽어보세요. 믿을 수 있는 곳인지 판단할 수 있어요. 묶게 된 곳의 주소를 가족에게 알려주고 떠나시고요. 여행을 다닐 때 가장 중요한 건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니까 어딜 가든 안전 문제는 꼼꼼히 살피세요. 경험에 비춰볼 때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든다면 그곳엔 가지 마세요. ‘괜찮겠지’ 생각하는 순간 신변이 위험해지고, 물건을 도둑맞아요.”

인터뷰 말미, 문득 자신만의 방식과 목표로 국내외를 누비는 이 모험가에게도 못 가본,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 미혼이라니 허니문 장소로 점찍어둔 곳도 있을 듯했고 말이다.

“신혼여행지요?(웃음) 어떻게 아셨어요. 한 군데 생각해둔 곳이 있긴 한데…. 터키 여행 때 들렀던 카파도키아는 최고로 아름다운 여행지였어요. 벌룬투어가 환상적인 것으로 유명해요. 아직 남극을 못 가봐서 그곳도 꼭 한 번 가보고 싶고요.”

강기태 총장은 요즘 또 다른 길을 개척하려는 구상에 한창이다. 농업의 귀중함을 알리는 트랙터 여행을 하면서 농촌 교육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농촌 아이들이 도시 아이들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고 고유한 영역을 확보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연구 중이란다. 어떤 험한 길도 갈 수 있는 트랙터처럼 자신만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 이 용감한 모험가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박재찬 ■사진 제공 / 강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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