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내요, 슈퍼 파워 현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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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엽을 떠올리는 우리의 머릿속은 매직 히포, 고려대, 파워 포워드 그리고 예능, 성공적. 1990년대 농구 스타가 ‘슈퍼 파워’라는 역대급 캐릭터로 돌아왔다.

힘을 내요, 슈퍼 파워 현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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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이라는 어떤 신세계
그는 농구대잔치 시절 운동깨나 한다는 남고생들의 우상이었고,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다슬에게 빙의한 여고생들의 로망이었다. 덩크슛으로 백보드 유리를 ‘박살’낼 정도의 괴력과 영민한 플레이로 고려대 농구부를 이끌었던 현주엽(41)은 1990년대 우리나라를 흔들었던 농구 열풍에서 빠져서는 안 될 이름이다. 2009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좀처럼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그를 MBC-TV ‘무한도전’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예능 블루칩 서장훈의 손을 잡고 출연한 그는 주어진 미션마다 왕년의 파워풀한 면모를 선보이며 ‘슈퍼 파워’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얻었다. 농구 스타의 첫 예능 나들이. 이만하면 괜찮은 수확이다.

이렇게 인사해야 할 것 같아요. “반가워요, 슈퍼 파워!” 요즘 현역 선수 시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20년 넘게 농구를 하고, 프로에서 10시즌을 뛰었는데 그것보다 ‘무한도전’ 한 번 출연한 게 더 화제가 되더군요. 요즘 농구 중계하러 경기장에 가면 ‘슈퍼 파워’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오신 분들도 꽤 있어요(웃음).

예능 출연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사실 예능 프로그램 섭외는 꾸준히 받아왔어요. ‘무한도전’ 작가님도 몇 번이나 전화를 주셨고요. 그동안은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계속 고사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절친한 서 회장(서장훈)도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같이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자고 바람을 넣더라고요(웃음). 그럴 줄 알고 나가겠다고 한 건데….

말끝이 흐려지는 이유는 뭘까요(웃음). 아침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18시간 동안 녹화를 했어요.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예능은 처음이라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머쓱하기도 했고. 촬영 당시에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어요(웃음).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참 좋은 경험이었죠. ‘무한도전’의 열혈 팬으로서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의미 있었고요.

실제로 만난 무도 멤버들은 어땠나요? 제일 인상 깊었던 사람은? 유재석씨는 정말 프로 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에요. 피곤하고 힘든 만큼 대충 넘어갈 법도 한데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하고 점검하더라고요. 끊임없이 게스트를 배려하고 챙겨주는 모습도 인상 깊었어요. 어느 분야건 최고라고 인정받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라는 걸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일 웃겼던 멤버는 박명수씨! 정말 재미있었는데 비방용 멘트들이 워낙 많아서(웃음), 편집된 게 아쉬워요.

하하씨나 김영철씨가 짓궂게 놀리곤 하던데, 현장 분위기는 좋았어요? 다들 잘해줬어요. 현장에서 하하랑 김영철씨가 ‘슈퍼 파워’라고 놀린 덕분에 저도 더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죠. 녹화 끝나고 하하랑 따로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못 봤어요. 조만간 장훈이 형이랑 셋이 만나서 술 한잔할 계획이에요.

방송 후에는 어김없이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곤 했어요. 대중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할 텐데 말이죠. 그럼요, 부담되죠. 저는 해설위원이든, 감독이든 앞으로도 계속 농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 방송인으로 비쳐질까 봐 염려스럽기도 해요. 반대로 좋은 점은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들이 아빠를 좀 다른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웃음)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출연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드네요.

힘을 내요, 슈퍼 파워 현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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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진출을 묻는 질문에 “내가 있을 자리는 아니지만 기회가 온다면 생각은 해볼 것이다”라는 대답을 했어요. 여지는 남겨두겠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깁니다만. 출연해보니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예능,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웃음) 좋은 경험이었지만 자꾸 방송에 얼굴을 비치면 농구계로 돌아오기가 힘들 것 같아요. 저는 농구가 주업인 사람이니까 일단은 여기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농구
한국 농구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 ‘X 세대’는 만화방에서 대기 번호까지 받아가며 「슬램덩크」를 빌려봤고, 지금은 은퇴한 농구계의 전설 마이클 조던의 덩크슛에 전율했으며, 대학농구부를 다룬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열광했다. 현주엽은 그 시절 선수 생활을 한 것이 행운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우리는 안다. ‘매직 히포’ 덕분에 농구대잔치의 잊을 수 없는 명장면들이 탄생했다는 것을.

농구가 가장 사랑받던 시절, 드래프트 1순위로 코트를 누빈 선수였어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이기도 하고요. 운이 좋았죠. 좋은 시절에 누릴 수 있는 것은 원 없이 누리며 운동했으니. 요즘은 그때만큼 인기 있는 종목은 아니니까 선배로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어요.

당시 농구장 객석을 점령했던 오빠 부대 생각도 나네요. 그때는 ‘오빠’란 말을 귀가 아플 정도로 들었었죠(웃음). 사실 저는 여동생도 없고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운동만 했던 사람이라 ‘오빠’라는 말이 얼마나 어색하고 싫었는지 몰라요. 한 번은 경기 중에 너무 시끄러워서 “너 좀 조용히 해!” 하고 화낸 적도 있어요. 물론 요즘은 그런 말 들을 일이 없으니까 살짝 그립기도 하네요. 하하!

현주엽과 신기성, 전희철로 대표되던 고려대. 서장훈, 문경은, 이상민이 포진한 연세대. 영원한 라이벌인 두 대학 농구팀의 대결 또한 놓칠 수 없는 볼거리였죠. 예전에는 고연전 할 때마다 전쟁터로 향하는 장수의 심정이랄까(웃음). 자존심 대결이 대단했죠. 그래서 고대와 연대 선수들 사이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그렇지는 않아요. 양 팀 중 국가대표 선수로 뽑힌 친구들끼리는 4, 5개월 정도 훈련을 같이하거든요. 고대 대표, 연대 대표로 만난 코트에서는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끝나면 살살 좀 하라고 농담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죠. 그중 (서)장훈이 형, (이)상민이 형, (전)희철이 형, (신)기성이는 지금까지도 자주 보는 친한 동료들이에요.

이제는 현역에서 한 발짝 떨어져 MBC 스포츠 플러스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저는 중계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요. 선수 시절에는 우리 팀이 이기는 데만 온 정신을 쏟았어요.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경기를 보니까 또 새롭더라고요. 이 선수의 좋은 점과 저 선수의 본받아야 할 점이 다 보여요. 시야가 좀 더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자연스럽게 농구에 대한 ‘촉’이 옛날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아요. 해설하면서 지금도 끊임없이 농구를 배우고 있죠.

힘을 내요, 슈퍼 파워 현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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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농구만 하고 살아왔잖아요. 지루할 법도 한데, 아직도 농구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이 느껴지네요. 농구 선수들끼리 하는 말이 있어요. 예전에는 장님이었다가 눈뜰 때쯤 되니까 몸이 안 좋아진다고. 현역 시절에는 농구에 대해 잘 모르다가, 뭔지 좀 알겠다 싶을 때쯤이면 은퇴할 나이가 된다는 뜻이에요. 저도 선수 시절에는 농구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질문 그대로 평생 농구만 하고 살아왔으니까요. 지루하기도 했고, 다른 일도 해보고 싶었고.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알면 알수록 농구가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농구와 관련된 일을 할 거예요. 선수 시절에 못해본 것들 다 해봐야죠.

못해본 것들이라면? 우승. 프로에서 우승을 한 번도 못해봤어요. 기회가 돼서 감독이나 코치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꼭 한 번 우승 트로피를 안아보고 싶어요(웃음).

그리고 또 시작되는 이야기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은퇴 후 그의 이야기.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호되게 인생의 쓴맛을 봤다. 죽을힘을 다해 뛰던 4쿼터, 전쟁터 같았던 농구 코트를 벗어나면 좀 편안하게 살 줄 알았는데 명백한 착각이었다. 밖은 전쟁터보다 더한 곳이었다.

무릎 부상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게 됐어요. 은퇴 후 힘든 시간을 겪는 선수들이 많죠. 은퇴와 동시에 가족과 미국을 가려고 준비하던 중이었어요. 수익이 날 만한 괜찮은 사업이 있다는 친구의 말만 믿고 그 친구 계좌에 돈을 맡겨놨다가 사기를 당했어요. 정말 믿었던 사람이라 아무런 의심도 없었죠. 그때 피해 입은 금액이 30억원 정도 돼요. 마음고생은 뭐, 말로 표현이 안 되죠.

그래도 이제는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마음에 굳은살이 박인 걸까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거기에만 매달려 있으면 너무 불행하잖아요. 다른 일도 좀 해보고 그러면서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본인이 노력한 만큼 얻는 게 세상 이치예요. 인생에 공짜는 없죠. 적든 많든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살아야 하는 건데, 당시에는 제 욕심이 과했나 봐요. 좀 더 편하게, 쉽게 많은 이익을 얻고 싶어 했으니까요. 앞으로는 제 그릇만큼만 바라고 욕심내며 살아야죠.

힘을 내요, 슈퍼 파워 현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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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간을 겪으며 깨달은 것도 분명 있겠죠?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은퇴 직후에 그런 좋지 않은 일을 겪었다는 거예요. 30대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시간적 여유가 있었어요. 만약 마흔이나 쉰이 넘어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 안정된 상황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면 그냥 자포자기하고 살았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시련을 겪다 보니 주변의 옥석이 가려지더라고요. 이제는 함께 고생했던, 소중한 사람들만 곁에 남았으니 감사한 일이죠.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요? 물론 가족이죠. 예전에 제 이름을 검색했더니 연관 검색어에 ‘현주엽 이혼’이 뜨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운동선수가 은퇴하면 사기당하고 이혼하고, 이런 걸 코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 봐요(웃음). 제게 가족은 힘이고 행복이에요. 아내와 이제 일곱 살 그리고 여섯 살 된 두 아들. 모든 가장이 그렇듯 저도 이 세 사람이 삶의 이유예요.

식상한 질문이에요. 아이들이 농구를 하겠다고 하면 아버지 현주엽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식상하게 대답하자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라면 100% 밀어줘야죠!(웃음) 물론 꼭 하겠다면 쫓아다니면서 말릴 수는 없겠죠.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에요. 농구가 결코 쉬운 운동이 아니거든요.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팀 내에서 동료와 함께 협동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다 보니, 개인 운동보다 힘든 측면이 있어요. 아버지이자 먼저 그 길을 갔던 선배로서 그렇게 조언하고 싶어요.

가족과 함께하고, 농구 해설을 하는 요즘의 일상은 어때요? 만족하나요? 네, 화목한 가정이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정말 힘든 일들을 겪고, 다시 농구계로 돌아왔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한 제게 농구는 고향 같은 존재예요. 고향에 돌아온 요즘은 마음이 편안해요. 행복해요!

‘슈퍼 파워’로 시작한 인터뷰지만, 마지막은 농구로 끝내려 합니다. 현주엽에게 농구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할 일.

섭외 전화를 했을 때도, 화보 촬영을 위해 여러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그의 반응은 딱 3가지로 귀결됐다. ‘이걸 어떻게 해요’, ‘못해요’, ‘안 해요’. 하지만 그럴 리가. 머쓱하고 난처한 표정을 짓던 그가 ‘무한도전’에서 그랬듯, 옛날 농구 코트에서 그랬듯 일순간 슈퍼 파워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현주엽의 본모습이지. 고마워요, 슈퍼 파워!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신우 ■헤어&메이크업 / W퓨리피(02-549-6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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